한때 ‘수입 열대 과일’의 대명사였던 아보카도가 이젠 한국의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서도 자란다. 기후위기 시대의 역설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지인의 베란다에서 자라는 아보카도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마트마다 아보카도가 흔해졌고, 과카몰레나 아보카도 샐러드는 이제는 낯선 음식이 아니다. 그래도 아보카도는 여전히 ‘수입 과일’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제주에서 애플망고와 커피가 자란다는 소식도, 남해안에 바나나 농장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어딘가 남의 일 같았다. 그런데 연구시설도 아닌 서울 어느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보카도가 자란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아열대는 뉴스가 아니라 우리 집 창밖의 풍경이 되어 있었다.
한때 아보카도는 한국에서 귀한 이국 과일이었다. 과테말라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스페인어를 배우던 시절, 한국에서는 비싸서 선뜻 손이 가지 않던 아보카도가 그곳에서는 우리네 고추만큼이나 흔했다. 잘 익은 과육에 소금만 살짝 뿌려도 훌륭한 간식이 될 만큼 맛도 영양도 좋았다. 기회가 될 때마다 부지런히 아보카도를 챙겨 먹었더니 현지 친구는 스페인어보다 아보카도 농사를 배우는 편이 낫겠다고 했다. 금방 부자가 될 거라면서.
아보카도는 기후위기 시대의 역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식재료다. 건강한 지방과 풍부한 영양소 덕분에 ‘슈퍼푸드’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재배 과정에서 막대한 물을 소모하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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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보카도 한 개를 생산하는 데에는 평균 300ℓ 안팎의 물이 필요하다. 멕시코, 과테말라, 미국 캘리포니아 등 주요 생산지들은 공교롭게도 기후변화로 가뭄이 심해지는 지역이다. 건강한 식탁을 위해 선택한 음식이 다른 지역의 물 부족을 심화시키는 아이러니다. 게다가 아보카도 대부분은 냉장 컨테이너에 실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우리 식탁에 도착한다. 건강을 챙기려 집어 든 과일이 그 여정만큼의 탄소발자국도 함께 남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건강식 열풍으로 아보카도 수요가 급증하면서 일부 생산지에서는 숲을 개간해 농장을 넓히고, 막대한 수익을 노린 범죄 조직이 생산과 유통에 개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유럽이 커피와 코코아 등 산림 훼손과 연관된 농산물의 수입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제 아보카도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기후와 물, 생태계와 국제무역이 모두 얽힌 기후위기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 아보카도가 이제는 한국에서도 열린다. 제주를 넘어 남해안, 그리고 일부 지역에서는 노지 재배까지 시도되고 있고, 베란다에서 직접 키우는 사람도 하나둘 늘고 있다. 과테말라 친구가 농담처럼 던졌던 아보카도 농사를 지으라는 말은 기후위기 덕분에 반쯤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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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아보카도 묘목을 수입한 것이 아니라, 아열대라는 기후 자체를 한반도로 들여온 셈이다.
다만 이 거래는 공짜가 아니다. 국산 아보카도를 얻게 된 대신 우리는 무엇을 내어주고 있을까. 아삭한 사과와 시원한 배추, 제철 오징어와 조개처럼 익숙했던 음식들이 .。 낯설어질지 모른다. 아보카도 플러스. 오징어 마이너스. 길어진 폭염 플러스. 짧아진 봄 마이너스. 기후가 그려낸 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보면, 어쩐지 우리가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몇 년 후면 지인의 베란다에서 갓 딴 아보카도로 과카몰레를 만들어 먹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한 입은 국산 아보카도 맛보다 우리 곁까지 성큼 올라온 아열대 기후를 먼저 떠올리게 할 것 같다.
한양대 관광학과 겸임교수
■ 한 스푼 더 - 기후가 바꾼 생산지
와인 산업은 전통적인 산지였던 남유럽에서 이제 일본 홋카이도와 영국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올리브의 노지 재배가 시험 중이고, 아열대 과일 재배지가 빠르게 늘어난다.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작물은 。。 더 북쪽, 더 높은 곳으로 이동 중이다. 사과 재배의 중심이 대구·경북에서 강원도로 이동한 지 오래고, 제주에서 시작된 아열대 과수는 남해안과 내륙까지 재배 범위를 넓히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특산지 지도가 기후 변화와 함께 새로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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